문체부가 축구협회의 운영과 행정상 문제점을 조사하겠다고 발표한지 하루만에 축구협회가 반기를 들었습니다. FIFA 규정을 빌미로 '월드컵 출전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엄포를 놓았죠. 오늘은 축구협회의 엄포가 가져올 파장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겠습니다.
문체부의 직권조사에 맞선 축구협회 - 판을 잘못 읽었다
축구협회의 논리 - 독립성 보존받아야
축구협회는 FIFA 정관에 규정된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대전제를 찾아내고 쾌재를 불렀을 것 같습니다. 아래의 두 사례를 찾아냈기 때문일텐데요
- 2023년 이스라엘 대표팀 입국 거부한 인도네시아의 개최권 박탈
- 2015년 쿠웨이트 정부가 축구협회 행정개입을 위한 법률 개정후 쿠웨이트 축구협회 FIFA 자격 박탈
관련된 규정은 이렇습니다.
FIFA 정관 14조 1항 | 독립성: 회원 협회는 자치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제3자로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 |
FIFA 정관 15조 | 회원 협회는 제3자가 협회의 결정을 통제하거나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먼저 이 두 가지 조항의 목적에 대해 확인을 해봐야 할텐데요.
축구협회가 말하는 독립성에 대해서는 목적을 같이 합니다. 하지만 축구협회가 간과한 내용이 있죠. 해당 조항은 동시에 제 3자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 설정된 조항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축구협회의 비리조사와 관련된 사항이 '부당하냐'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데. 과연 부당한 개입이 맞을까요?
- 2023년 종교적 갈등을 이유로 이스라엘 대표팀 입국 거부한 인도네시아의 개최권 박탈
- 2015년 쿠웨이트 정부가 축구협회 행정개입을 위한 법률 개정후 쿠웨이트 축구협회 FIFA 자격 박탈
인도네시아와 쿠웨이트의 경우는 논란의 여지 없이 '정부의 부당한 개입'이 맞습니다.
전 세계에 정부가 직접 개입한 나라는 없었나?
축구협회는 이걸 못찾아 낸건지,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척 한건지 모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틀린말입니다.
가장 비슷한 사례를 먼저 볼까요?
프랑스 정부의 개입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참가한 프랑스는 예선부터 불안한 경기력을 노출하며 논란이 계속되었습니다.
당시 감독이었던 레이몽 도메네크의 선수 선발과 운영이 쟁점이었는데요. 특히 프랑스는 2010년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1:0으로 지면서 자존심을 구겼죠. 축구에 대한 자존심이 매우 강한 프랑스로서는 심기가 매우 불편했을 겁니다.
남아공월드컵 본선 결과 (조 최하위 탈락)
- 우루과이 | 0 : 0 무승부
- 멕시코 | 0 : 2 패
※ 니콜라 아넬카 팀 퇴출 : 감독에게 폭언, 선수들 훈련 보이콧 - 남아공 | 1 : 2 패
정말 충격적인 결과이지만, 전 대회 준우승팀인 프랑스가 조별리그에서 조 최하위 성적으로 탈락을 해버린 거죠.
사르코지 대통령의 청문회 요청
사태가 이정도 되자, 당시 프랑스의 대통령이었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청문회를 요청합니다. 프랑스 축구협회가 도메네크 감독과 주요 선수들을 소환해서 사건 경위를 조사했고 문제가 드러난 인원에 대해서는 제재가 가해졌고요.
- 니콜라 아넬카 : 18경기 출장 정지
- 파트리스 에브라 : 5경기 출장 정지
- 프랑크 리베리 : 3경기 출장 정지
결국, 프랑스 축구협회는 팀 전체에게도 한 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내렸습니다. 결국 프랑스의 남아공월드컵 실패는 팀 내부 갈등과 관리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밝혀졌고, 이 일을 계기로 프랑스 축구는 조직과 운영 측면에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됩니다.
중국 공산당의 축구협회 비리 척결
많은 분들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 축구도 오랜 비리와 부패 문제로 몸살을 앓아왔습니다. 소림축구로 전락한 중국축구가 이유없이 그리 된 것이 아니었죠.
특히, 지속적인 내부비리와 승부조작 등은 굉장히 골치아픈 사안이었습니다.
공산당의 대대적인 수사
참다 못한 중국 정부는 2009년 축구계 비리척결을 위한 대대적인 수사를 단행합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고위 인사들이 체포되기도 했는데요. 당시 전 중국 축구협회 주석 천쉬쉬안(샤오티엔)과 전 부주석 장젠을 비롯한 다수의 고위인사가 불법도박, 승부조작,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중국의 축구협회는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청렴성과 투명성을 강조하는 다양한 제도적 개혁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프랑스와 중국도 FIFA의 제제를 받아 자격을 박탈당했을까요?
프랑스와 중국 정부의 축구협회 개입에 FIFA는 경고 외에 아무런 제재나 조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정부의 개입이 축구협회의 독립성을 침해하는지 심도있게 모니터링 했지만 내부적인 해결을 권장할 뿐 두 나라 정부의 개입에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죠.
“FIFA의 역할이 프랑스 국회의원을 협박하는 것인가”
“이번 사태는 축구만의 일이 아니라 프랑스 전체의 일”
당시 정부개입 중단을 촉구했던 FIFA 의 성명에 대해 프랑스 정부는 위와 같이 대응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정관까지 마련해둔 FIFA 입장에서 할수 있던 조치는 그 정도가 전부였겠죠.
결국, 축구협회가 떳떳하다면 그들의 논리는 힘을 받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문체부 혹은 윤석열 정부와 축구팬들을 고의적으로 기만하고 맞지 않는 논리를 들어 엄포를 놓은 것입니다.
당연히, 정부가 유관기관인 축구협회의 비리를 조사하겠다고 나서는 것에 FIFA가 움직일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벌집을 쑤셔놓은게 아니길 빌어야할 듯
2020년 대검찰청 국정감사의 중심이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이력을 아직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당시 거칠었던 여당을 더 거칠게 몰아붙였던 현 대통령의 정치적 성향으로 미루어 봤을 때. 축구협회의 얄팍한 술수가 대한민국 정부를 들쑤신 것이라면, 정몽규 회장을 비롯한 축협의 책사들은 앞으로의 언행을 굉장히 조심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축구사랑을 잊은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축구협회 엄포, 정부 대응은?
윤석열 대통령 역시, 국민들이 느끼는 손흥민과 한국축구에 대한 자부심에 무게를 실어 메세지를 전달했었고. 손흥민을 비롯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축구와 축구인들, 그리고 축구팬들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지지율과 민심을 좌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죠.
특히, 이번 축구협회 논란의 중심인 20대 부터 40대의 부정적 여론이 80% 이상인 것을 감안한다면. 정부가 칼을 빼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입니다.
(대표팀 감독자리에 대한 이야기는 축구협회 사안이 납득 가능한 수준에서 정리된 이후에 처리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마치며
정몽규 회장의 왕국이 되어버린 축구협회는 오랜 부정과 탁상행정, 불통의 역사를 버리지 못했고, 끝까지 어리석은 결정을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도 이 정도의 위기감을 처음 경험한 탓일까요. 이번 논란에는 온 국민이 다 느낄 정도의 공분을 자아내고 있는데요.
호랑이 등에 올라타 벼랑끝으로 달리는 축구협회가 어느 지점에서 멈출지, 개인적으로 참 궁금해지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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